박쥐 백작의 키스 1권
박쥐 백작의 키스 1권
박쥐 백작의 키스 1권
1.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구경 가고픈 도시 경성. 내지에서 건너온 일본인들이 거주민의 3분의 1에 달하고, 으리으리한 석조 건물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고, 전차와 자동차와 인력거가 어지럽게 달리고, 카페에는 찐득한 쨔스(재즈)가 흐르는 신문명의 도시 경성!

지금 어두운 북촌 골목길에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걷고 있는 신여성의 이름은 금자였다. 저고리에 치마가 익숙한 시절이었지만 금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양장을 걸쳤다. 본정의 백화점에서 일하는 ‘데파트 걸’의 월급이 고작 20원인데 금자가 신고 있는 소가죽 구두만 15원이었다. 조선인들이 갖신과 짚신을 벗어 던진 지 오래였으나 구두는 웬만한 노동자들은 엄두도 못 내는 사치품이었고 대다수는 갖신 모양의 고무신을 신었다. 박래품(舶來品)인 투피스 정장에 리본 달린 맥고모자까지 합하면 금자는 무려 50원에 달하는 사치품을 걸치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여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았고 외출할 때는 양장을 입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끽다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던 걸’이었다. 하지만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선비가 봤더라면 세상 망할 징조의 ‘못된 걸’이었고 돈 몇 푼에 정조를 버리는 탕녀라고 했을 게다. 금자의 사치스러운 소비 생활을 가능케 하는 것이 유부남 두취(은행장)의 용돈과 선물이었으니 도포짜리의 비난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조를 잃은 헤픈 모던 걸들에 걸맞은 배우자는 머릿속에 공맹의 가르침 대신 서양의 겉멋만 잔뜩 들어앉은 모던 보이들뿐이리라.

“아유, 무서워라. 이럴 줄 알았으면 두취 아저씨에게 바래다달라고 할걸.”

금자는 희미한 달빛 아래 미로처럼 펼쳐져 있는 검은 골목을 보고 몸을 떨었다. 일본인들이 모여 사는 남촌에는 전기등이 많아서 밤에도 나다니기 무섭지 않았으나 조선인들이 사는 북촌에는 가로등은 고사하고 전기가 들어오는 집도 드물었다. 금자는 늦게까지 불야성인 본정에서 노느라고 북촌의 짙은 어둠을 잠시 잊었던 게다.

건축왕 정세권이 지은 개량 한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거 단지는 그래도 간간이 전기불빛이 새어 나와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식 한옥들이 늘어선 금자네 동네로 접어들자 퀴퀴한 냄새와 함께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금자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다. 낮에는 순사들의 취체(단속)가 자주 있어 불량배들이 나대지 못했으나 해가 진 북촌의 골목은 아녀자 혼자 돌아다니기엔 적절치 않은 우범 지대였다.

두취는 백화점에서 반짝이는 장신구를 사주고 저녁에는 여관에 들어 금자의 발가벗은 몸 위에서 헐떡였으나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부인에게 꽉 잡혀 사는 두취는 금자와 팔짱을 끼고 다니다가 사람들 눈에 띄는 걸 두려워했다. 본정에서 지인을 마주치면 부하 직원이라 둘러대면 될 일이었지만 북촌에서 어슬렁대다가는 조일 은행 두취가 첩을 얻었다고 소문이 날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끽다점에서 허우대 좋은 모던 보이라도 데려올 것을. 가슴속에 후회가 밀려오는 금자였다. 달걀 모양 얼굴에 박가분을 발라 놓은 금자는 오뚝한 콧대 때문에 할리우드 여배우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입을 가리고 호호 웃어 주면 조선 남자든 일본 남자든 헤벌쭉 입을 벌리곤 수작을 걸어왔다. 모르는 남자에게 집까지 배웅해 달라는 건 일도 아니었으나 여관에서 몸을 섞은 남자와 헤어지자마자 또 다른 사내를 유혹하는 건 모던 걸인 금자에게도 꺼림칙한 일이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금자는 두려움을 쫓기 위해 이애리수의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이어서 윤심덕과 고복수의 노래까지 흥얼거렸지만 북촌 끝자락에 있는 금자의 집은 아직 멀었다.

“헉…….”

노랫가락이 끊어지고 금자가 밭은 숨을 삼켰다.

“저게 뭐래…….”

금자는 골목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음침한 그림자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검은 장막으로 휘감은 둥그런 기둥처럼 보였다. 수없이 지나다닌 골목이었지만 여태껏 저런 조형물을 본 적이 없었던 금자는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누가 저런 흉측한 걸 세워 놨을까? 금자는 북촌에 사는 도포짜리들이 세워 놓은 열녀비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조선 시대에는 과부가 재가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거나 남편을 따라 죽으면 중앙 정부 차원에서 열녀문이나 열녀비를 세워 줬다. 여인의 순종과 정절을 기리기 위해서라지만 아름다운 취지와는 다르게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고 임금이 내리는 포상을 받기 위해 여자에게 자결을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과부가 재가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포상을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심한 것은 조선인들이 모두 황국 신민이 된 뒤에도 남존여비의 향수에 젖은 도포짜리들이 넘쳐난다는 점이었다. 모던 걸인 금자에게 열녀문이나 열녀비는 미개한 인습일 뿐이었다.

금자는 열녀가 났다고 상을 내리던 나라도 망했는데 북촌의 어떤 고루한 가문이 저따위를 세웠을지 궁금했다. 분명 재산이라곤 족보밖에 없는 가난한 도포짜리 집안일 테지.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검은 장막에 휘감겨 있는 것은 열녀비 같은 게 아니었다. 장막에 휩싸여 꿈틀대는 것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누, 누구?”

펄럭. 장막이 펼쳐지더니 달빛을 가렸다. 마치 박쥐와도 같은 그림자 안으로 금자의 몸이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살려…….”

금자는 목을 뚫고 들어오는 끔찍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의 새된 소리는 검은 장막 안으로 말려들어 갔다. 금자의 목을 타고 흘러내린 선혈이 바닥에 천천히 흘렀지만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만월을 배경으로 박쥐 몇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쿵쿵쿵쿵. 북촌 끝자락에 있는 한옥 마당에서 절구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양절충(和洋折衷)의 문화 주택도 아니고, 수도가 나오는 개량 한옥도 아닌 철저한 구식 한옥이었다.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변소는 밖에 나와 있고 난방과 취사는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하는 온돌이었다. 물은 동네에 있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길어다가 썼다. 우물물은 오염에 취약해서 매년 여름이면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가 돌아 집집마다 사람이 죽어 나갔다.

조선의 변소는 일본처럼 독을 묻지 않고 맨땅을 파서 만들었기 때문에 지하수가 오염되는 일이 많았다. 총독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공공장소에 변소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길바닥에 대소변을 봐서 길거리가 똥밭이었다. 합방 이후에 위생 상태가 현저하게 개선됐지만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남촌과 조선인들이 거주하는 북촌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례로 남촌에는 변소의 똥을 푸는 잡부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왔지만 북촌에는 2주나 3주 만에 오기도 했다. 그래서 북촌의 변소들은 똥이 넘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박 씨네 집 변소는 똥이 넘칠 일이 없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똥 무더기 속으로 추락하는 재래식 조선 변소였던 것이다.

쿵쿵쿵쿵. 새벽부터 나무 공이를 들고 쌀을 찧고 있는 여인은 박씨 집안 맏며느리 진월화. 맏며느리라는 무게감에 비해 아직 소녀처럼 앳된 얼굴이었다. 시가에는 시부모와 남편 박선구, 딸 미단이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았다. 남편이 어릴 때는 행랑에 머슴도 제법 살았다고 하는데, 갑오개혁으로 면천이 되자 기왕이면 부잣집에서 일하겠다며 다들 떠나 버렸다. 박씨 집안 차남 박선태는 돈을 벌겠다고 만주로 떠나 소식이 없고 하나뿐인 딸 박미선은 늙은 순사에게 시집간 후로 친정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시가도 조선 중기에는 만석꾼이었다는데 점차 가세가 기울어 지금은 손바닥만 한 논마지기에서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로 소출이 나왔다.

월화는 어린 나이에 민며느리로 들어와 7년간 소처럼 일했다. 먼동이 트기 전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우물에서 물을 긷고, 아궁이에 불 피우고 밥을 짓는 것이 월화의 아침 일과였다. 물론 남편과 시부모가 식사를 마친다고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설거지를 마친 뒤에는 빨래와 청소를 하고, 장작을 패서 땔감을 채워 넣고 다시 우물에 가서 물을 긷고, 바느질을 하다가 시부모와 남편을 위해 점심 준비를 했다. 오후에는 장독대에 가서 일하다가 계절 반찬이나 제수 음식을 만들고,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아궁이로 가서 불을 때고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저녁이 되면 바늘을 들고 가족들을 옷을 손질하고 시부모의 안부를 살핀 뒤에 가족들이 모두 잠들고 난 뒤에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월화의 친정도 양반 가문이었지만 시댁보다 훨씬 가난해서 식구를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열 세 살밖에 안 된 월화를 박씨 집안에 민며느리로 보냈다. 생리를 시작하자 나이 많은 남편이 밤마다 월화의 다리를 벌리고 들어왔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아픔을 참아 가며 견딘 월화는 딸 미단이를 낳았다. 아들을 기대했던 시부모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고 월화는 아들을 낳지 못하자 점차 천덕꾸러기가 되어 갔다.

“아침밥은 언제 주는 거냐? 영감님 시장하시다.”

시어머니 이혜주가 건넌방에서 내다보지도 않고 소리를 높였다. 월화는 마음이 급해져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혼자서 다섯 식구의 밥상을 차리려니 아침이 되면 정신이 없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밥상은 큰 상에, 여자들 밥상은 작은 상에 차렸다. 문화 주택에 사는 신식 가족들은 부부가 겸상도 한다는데, 조선의 법도가 추상같이 살아 있는 이 집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배고프다! 도대체 언제까지 노인네를 굶길 거여!”

시아버지 박영준이 가래 끓는 소리로 외쳤다. 워낙에 꼬장꼬장한 도포짜리인데 요즘은 망령이 났는지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식구들을 때렸다. 그래도 집안 어른인지라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네네, 상 들어가요. 좀 기다리셔요.”

월화는 고봉밥에 된장국, 김치, 장아찌, 젓갈을 올린 남자 밥상을 두 손으로 번쩍 들었다. 팔이 저릿저릿했지만 남편 선구는 절대로 도와주지 않는다. 여자들 일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부친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어데 사내가 여편네들 하는 일을 거든단 말이고! 집안 망하는 꼴 보고 싶나!”

원래 선구가 자상한 성격도 아니거니와, 시아버지의 호통을 몇 번 듣고 난 후로는 치사한 마음이 들어 일절 부엌일을 맡기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집에 며느리를 들인 후로는 살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잔소리와 훈수 두는 일에 집중했다.

“내가 살림할 때는 이렇게 안 했는데……. 시집을 왔으면 밥값은 해야지. 며느리로 들어와서 쌀만 축내면 그게 도둑년이다.”

어린 나이에 친정에서 아무것도 배워 오지 못한 월화는 시집와서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나면서 살림을 배웠다. 시어머니는 월화가 제대로 일을 못 하면 머리를 쥐어박거나 귀를 잡아당겼고 말대꾸나 불평을 하면 대뜸 뺨을 치고 회초리를 들었다. 제일 원망스러웠던 사람은 시어머니에게 온갖 구박을 당하는 동안 수수방관하는 남편이었다. 앞에서 역성을 드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달래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툭 던지는 한마디가 월화의 속을 뒤집곤 했다.

“우리 어머니는 젊었을 때 당신보다 더 고생했어. 내가 고모가 넷에 삼촌이 셋이다. 겨우 다섯 식구 살림하면서 왜 그렇게 죽을상이야? 안 그래요, 어머니?”

“그래, 역시 내 아들이 효자다.”

흐뭇한 얼굴로 아들의 궁둥이를 두드리는 시어머니와 칭찬 듣고 으쓱하는 남편이 어찌나 얄밉던지. 처음에 시집왔을 땐 시댁 식구들이 치가 떨리도록 미웠지만 이젠 인이 박여서 시어머니의 어지간한 구박에는 웃어넘길 강단이 생겼다. 하지만 시아버지 밥상을 올릴 때는 여전히 조마조마하다. 언제 광기가 폭발할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후룩후룩 쩝쩝. 누렇게 땀에 전 저고리를 입고 된장국을 떠먹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자못 괴괴했다. 깡마른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된장국에 젖은 염소수염이 우스꽝스럽게 턱에 들러붙었다. 노인의 눈빛은 광인처럼 형형했지만 눈가에 가득한 노란 눈곱이 처량했다. 그는 조선의 마지막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지만 나라가 망하면서 벼슬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과거 급제한 유생으로서의 자부심이 만만치 않았고, 조선 중기에 고관을 배출했던 가문의 내력에 대해서는 신앙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

“우리 조상님들 중에 참판이 둘이요, 승지가 하나, 부윤이 셋이었다. 같은 양반이라도 벼슬을 제대로 해봐야 양반인 게지.”

은근히 월화의 친정을 깔보는 말이었지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다 보면 그저 개가 짖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망한 나라의 벼슬을 읊어 대서 쌀이 나온답니까, 돈이 나온답니까. 월화는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키며 조용히 웃곤 했다.

“국이 싱겁다! 시집온 게 몇 년인데 아직도 간을 못 맞춰!”

시아버지는 수저로 상을 탕, 내려쳤다. 시어머니와 월화는 움찔 놀라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본다. 박영준은 나이가 들면서 미각이 둔해져 반찬 투정이 심해졌다. 싱겁다, 싱겁다, 아무런 맛이 안 난다. 시어머니는 주저하는 월화에게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소금을 듬뿍 넣으라고 채근했다. 선구는 소금에 푹 절인 음식을 먹으면서도 아버지에게 대거리를 하지 못했다. 신식 교육도 받지 못했고 할 줄 아는 건 소작인들 닦달해서 소출 걷어오는 것뿐인 남자였지만 효심 하나는 깊어서 부모에게 찍소리도 못했다.

“임자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이런 국을 어찌 먹으라는 거야!”

“며느리가 끓인 국을 가지고 왜 나한테 타박을 해요…….”

시어머니가 돌아보지도 않고 부루퉁하게 답하자 드디어 시아버지가 폭발했다.

“이 여편네가 어디서 말대답을 해! 네가 똑바로 가르쳐야 할 거 아녀!”

시아버지가 버선발로 시어머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아이쿠!”

시어머니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밥상 앞에 고꾸라진다. 신음 소리를 내는 시어머니를 보는 월화는 안쓰럽다기보다 두려운 마음이 든다. 선구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조용히 밥만 꾸역꾸역 퍼먹고 있다. 시아버지가 밥그릇을 절반이나 남긴 채 상을 물렸다. 시어머니가 분한 표정으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표독스러운 눈길은 당연하게도 월화를 향했다.

“수저 내려놓고 문간방으로 오너라.”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월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단이가 눈을 깜빡거리며 월화를 올려다본다. 월화는 울상이 되어 건넌방으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종아리 걷어라.”

시어머니 손에는 싸리나무 회초리가 들려 있었다. 시집와서 저 회초리에 참 많이도 맞았다. 어린 나이에 처음 살림을 배울 때는 하루가 멀다고 회초리를 맞았다. 밥이 설익었다고, 쌀을 야무지게 씻지 않았다고, 절구질이 시원찮다고, 바느질이 서툴다고, 매정한 시어머니는 피딱지가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매를 들었다. 맞지 않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일을 배워야 했다.

휘익, 짝! 휘익, 짝!

월화는 회초리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와 종아리에 감기는 끔찍한 저 소리가 살이 베이는 것 같은 아픔보다 더 무서웠다. 구타를 당해 잔뜩 독이 오른 시어머니는 오늘따라 손이 매웠다. 회초리가 뱀처럼 살을 깨물어 월화는 신음을 토했다. 휘익, 짝! 종아리에서 주르르 피가 흘렀지만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 그만하세요. 요새 고약값도 만만치 않아요.”

선구가 웬일로 시어머니를 말렸다. 시어머니는 회초리를 내려놓았다. 당연히 며느리가 불쌍해선 아닐 게다. 아들의 약값 얘기에 아깝단 생각이 들었던 게지. 월화는 쓴웃음을 삼켰다. 시어머니는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회초리로 월화의 정수리를 툭툭 때렸다.

“앞으로 시아버지가 밥을 남길 때마다 네 종아리를 칠 테니 그리 알아라.”

월화는 분한 감정이 솟구쳤으나 꾹 참았다. 오래전에 시어머니에게 말대답을 했다가 시아버지의 곰방대로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머리 가죽이 찢어져 피가 철철 났는데 지금도 흉터가 머리털 속에 숨어 있었다.

“엄마, 마이 아파?”

기특하게도 미단이가 꼬물거리는 손으로 월화의 종아리에 고약을 펴 발랐다. 고약 냄새가 은은하게 방 안에 퍼졌다. 고약을 바르는 미단이의 손길은 어린애답지 않게 조심스러웠다. 엄마가 아프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아파. 근데 우리 딸이 약 발라 주니까 훨씬 덜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