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계 속 공주님 2권 (완결)
결계 속 공주님 2권 (완결)
결계 속 공주님 2권 (완결)
- 목 차 -


8화
9화
10화
11화
12화
13화
14화
epilogue
결계 속 공주님 2권 (완결)
8화



“데니스 부인.”
“누구?”
“날세.”
“아, 레무스 전하?”

데니스 부인이라고 하면 지난번 승전 파티 무도회의 드레스를 맞춰주신 유능한 디자이너시잖아.

“드레스를 하나 맞추고 싶어서 왔어.”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먼저 온 고객께서 지금 막 드레스를 갈아입으셨거든요.”
“그러지.”

황자인 레무스에게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하다니.

꽤 중요한 손님이 온 듯싶었다.

그건 그렇고.

이럴 거면 정체를 감추기 위해 허름한 옷을 입고 분장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은데.

“불손한 눈초리로군.”
“굳이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는 장소로 다니고 있잖아요.”
“그랬다면 마차를 타고 다녀야 했겠지. 그대는 직접 두 다리로 걸으면서 수도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던 거잖아.”

날 배려한 계획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이 드레스 마음에 드네.”

먼저 온 손님으로 추정되는 영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 목소리.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 황자 전하?”
“데르트 자작 영애로군. 새 드레스를 맞추러 온 모양이지?”

카모시 영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먼저 왔다고 하는 손님이 그녀일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머릿속이 새하얘져 버렸다.

카모시 영애 역시도 레무스를 바라보던 눈에 내 얼굴이 들어온 듯.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만 까딱하며 인사했다.

“왕녀께서도 계셨군요.”
“그녀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곳에 발걸음할 일이 뭐가 있겠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도 더 썩어 들어가는 얼굴.

마치 레무스의 옆자리에 내가 있음을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다.

“잠행을 나오셨군요.”
“역시 눈치가 빠르군. 그렇다면 우리 두 사람을 모른 척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을.”

우와.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면박을 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카모시 영애 역시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는데.

그녀는 레무스의 면박에도 여전히 얼굴에 환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승전 연회에서의 춤. 정말 잘 봤습니다. 늠름하신 모습에 또 한 번 반했어요.”

역시나 내가 착각한 게 아니었다.

카모시 데르트 자작 영애.

그녀는 분명 레무스에게 마음이 있었다.

“영애에게는 승전 무도회가 그 정도 의미에 지나지 않는 것 같군.”

레무스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마치 화난 사람처럼 카모시 영애를 쏘아보고 있었으니.

제아무리 자작 영애라고 해도.

지금처럼 얼어붙은 분위기는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물론 그 영광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자랑스러운 제국군의 것이겠죠. 하지만 제국군의 승리를 이끈 주인공은 바로 레무스 전하시잖아요.”

카모시 영애는 어느새 레무스의 소파 옆자리를 꿰차면서 아양 떨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꼴불견이던지.

그 장면이 보기 싫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카모시 영애가 레무스에게 호감을 표현한 순간부터 가슴 한편을 이물질로 틀어막은 듯 답답해졌으니까.

“볼일이 끝났으면 이만 갈 때도 되지 않았나?”
“황자 전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실례했습니다. 저희 데르트 가문의 사업 중에 전하께서도 흥미가 있을 만한 분야가 하나 떠올라서 말이죠.”

고개는 돌렸어도.

귀는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궁금했기 때문에.

“사업이라. 데르트 자작이 이제는 내 쪽으로도 줄을 대보라고 시키던가.”
“전하?”
“전쟁의 승리와 신녀의 확보. 확실히 내 위상이 올라가는 소리는 애써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귀에 들려온단 말이지.”

레무스는 여전히 무뚝뚝한 말투로 카모시 영애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황태자인 형님뿐만 아니라 나도 구워 삶아보고 싶어졌나? 내가 황위를 포기한 순간부터 그대의 가문은 사사건건 날 지지하는 귀족 가문의 앞길을 방해하며 사업을 확장했을 텐데.”

괜히 레무스가 데르트 자작가를 경계하던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