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관계는 1권
우리 부부의 관계는 1권
우리 부부의 관계는 1권
- 목 차 -


1. 메리엇과 레너드 그리고 인내심
2. 나를 좋아했다고?
3. 우리 부부의 관계
4. 테슬러 젠슨
5. 다시 돌아간다면
6. 눈 돌아간 레너드
7. 불안하다, 불안해
8. 이상한 레너드
9. 미친 것이 분명해
우리 부부의 관계는 1권
1. 메리엇과 레너드 그리고 인내심



얕은 계곡에서 조약돌을 줍던 메리엇이 순간 발을 헛딛고 말았다. 휘청거리다 풀썩 계곡물 안에서 넘어졌다.

“메리엇!”

첨벙 소리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메리엇을 위한 조약돌을 줍던 레너드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어디 다치지 않았어요?”

넘어진 메리엇을 번쩍 안아 든 레너드가 그녀를 어깨에 멘 채 맨다리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안 다쳤어요. 멀쩡해요.”

대롱대롱 매달린 발을 허공에 허우적대며 메리엇이 외쳤지만 레너드는 그녀의 대답을 못 들은 건지 여전히 무릎이며 발목을 살피고 있었다.

겨우 무릎께에서 빨간 자국을 발견한 그는 그곳을 열심히 문지르며 그녀를 안고 성큼성큼 바위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찾아준다니까, 왜 물속에 들어와서.”

물 밖 너른 바위 위에 그녀를 조심히 앉힌 레너드는 옆에 놓인 스타킹과 신발을 확인했다.

“나도 찾아주려고 했죠. 당신 거.”

‘당신’이란 말에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 레너드가 가만히 메리엇의 얼굴을 쳐다봤다.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린 그녀가 작게 소곤거렸다.

“작고 예쁜… 하얀 조약돌을 당신에게 선물해 주려고.”

쪽!

쪼그려 앉았다 벌떡 상체를 일으킨 레너드가 메리엇의 입술에 재빨리 입을 맞췄다.

“여기 작고 예쁜, 하얗고 사랑스러운 선물이 있는데 그걸 왜 찾아요?”

“에이, 당신은.”

쪽, 쪽, 쪽!

“내 말이 틀려요? 말간 조약돌보다, 보석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있는데, 그게 내 아내인데. 당신만 모르지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안다니까요.”

민망한 소리에 몸 둘 바를 모르던 메리엇이 레너드의 가슴을 툭 치려다 그에게 손목이 잡히고 말았다.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잡은 손목 안쪽부터 열심히 입을 맞추던 레너드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녀를 다시 안아 올렸다.

“안 되겠다. 집에 가야지.”
“내려줘요. 저 걸어서 갈 수 있다고요.”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걸 누가 모르나? 내가 당신하고 떨어져 가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한 품에 메리엇을 안은 레너드가 서둘러 산기슭을 내려갔다.

“레너드, 다쳐요. 저 내려줘요,”

돌부리도 있고 낮은 관목도 있는 기슭을 레너드는 이리저리 잘 피하며 열심히 내려갔다. 혹시라도 메리엇을 놓칠까 꼭 안고.

레너드의 목에 매달린 채로 그의 품에 안긴 메리엇은 잠깐 고개를 들어 그의 어깨 너머를 보았다. 싱그러운 초여름의 녹음이 그녀의 눈에 가득 담겼다.

‘행복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안겨 저런 풍광을 볼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메리엇, 조심해요. 내 목을 꼭 끌어안아요.”

달리는 와중에도 제 뒷머리를 조심히 받쳐 드는 남자의 가슴에 메리엇은 다시 뺨을 묻었다.

“레너드.”
“응?”
“사랑해요.”

잠깐 멈칫한 레너드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더 사랑해요, 백 배, 만 배, 아니 무조건 내가 더 많이 사랑해요.”

그녀의 거짓말이 들통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질지라도 메리엇은 절대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이 너무 행복하니까.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다시는!

***

연회가 시작된 지 한참이었다.

부인들과 영애들은 제 남편이나 영식들의 손에 이끌려 춤을 추러 홀에 나갔다.

몇몇 노부인들도 백발의 남편과 춤을 추고는 기분 좋게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도 했다.

제일 연장자이자 미망인인 샤벨 백작부인조차도 제 아들과 함께 춤을 추고 돌아온 지금, 단 한 번도 춤을 추지 않고 내내 자리를 지킨 여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한 명 있었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꽃 같은 젊은 부인 메리엇 알브레이트만이 춤 한 번 추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 자리를 지키며 다른 여인들의 춤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무뎌진 지 오래인데, 메리엇은 왜 자꾸 코끝이 시큰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았다. 남의 시선보다 자신이 더 불쌍하고 초라해 보여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메리엇은 울지 않으려고 입안 속살을 물고 안간힘을 쓰며 남편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를 이렇게 버려둔 그 대단한 남편은 황제 곁에서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연회가 시작될 때부터 황제와 얼굴을 맞댄 후 단 한 번도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하긴 이쪽을 돌아본다고 해서 그녀에게 미소라도 지어줄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제 손을 잡고 춤을 추지도 않을 것이다.

차라리 멀리 있어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그가 황제를 보필하느라 제 부인이 이러고 있는 것조차 잊은 걸로 보이는 게 덜 불쌍해 보일 것이다.

체념했음에도 화가 남은 것인지 와인을 마셔서 그런 건지 가슴께에 열이 올랐다.

아무리 손부채질을 해도 열이 식지 않아 결국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게실로 가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부인들이 저에게 측은한 눈빛을 보내는 게 싫어 정원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