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단된 감각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하늘이 마른 줄 알았다. 분명히 하늘엔 구름이 한가득한데도 퍼붓지 않았다. 조금씩의 비도 내리지 않은 구름 낀 하늘은 무거운 물방울들만 끌어안은 채 서울 하늘을 가리고 해까지 감춰 버렸다.

비를 내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더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연간 강수량이 100mm가 안 되는 나라에서는 인공 비를 내리게 하는 드론을 띄워서라도 강제로 내리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사람이 비를 내리게 하는 건 이전 사회에서는 신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과학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현대 사회는 이젠 그런 일들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럼, 과학으로도 자연을 건드리는데 자연의 일부인 사람의 마음도 강제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을까. 비를 내리는 것도 모자라 폭우를 내리게 하든, 폭풍이 오게 하든, 뭐든 가능해지는 날이 올까.

띵동.

구름 가득 낀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제희는 갑작스럽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현관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밖은 대낮이고 모든 커튼을 다 열어젖혔지만 왠지 모르게 집 안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웠다.

“서제희 씨, 계십니까?”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제희는 멈칫했다. 자신의 이름을 알만큼의 뭔가 올 만한 게 있던가.

스스로 알기론 없다.

현관문 앞에서 제희는 멈칫했고 문밖에 있던 상대도 더 이상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없으니 돌아가려는 듯한 발걸음이 들렸다. 한쪽의 감각을 차단하면 다른 감각의 촉이 살아나게 된다. 제희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자 상대는 엘리베이터를 잡았는지 엘리베이터의 도착 소리가 들렸다.

상대방이 가고 난 뒤, 제희는 그제야 문을 열고 나갔다. 집주인이 없으니 우편물이라면 우편함에 넣었을 거란 생각에 자신 또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예상대로 우편물 하나가 우편함에 덩그러니 꽂힌 채로 있었다.

누굴까. 그냥 단순한 홍보 우편물일까. 아니면 집의 관리에 관한 내용의 우편물일까. 그런데 그런 건 대부분은 우편함에 바로 꽂지 않나.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건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온 우편물처럼 느껴졌다.

흰색의 우편물을 꺼낸 제희는 보낸 사람의 이름 세 글자를 눈에 담아내곤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박현재.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분명히 다른 감각이 살아나야 한다. 그런데 그 이름, 한번 봤다고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무언가에 통제된 듯, 아니면 제 기능을 소실한 것처럼 아무것도 못 하게 됐다. 그렇다고 감각이 차단된다고 해서 감정까지 차단되진 않았는지 그 이름 세 글자, 한 번 봤다고 느끼는 건 눈물 한 방울밖에 없었다.

제희는 우편물을 꽉 쥐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손안에 들어온 이름, 세 글자를 입 안에서 굴리듯 불렀다.

‘박현재….’

다시 우편물을 확인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자신이 아는 글씨체가 아니다. 그 사람이 32년간 쓰던 글씨체와 달랐다. 반듯하고 정갈한 글씨체. 그 사람이 쓴 게 아니란 걸 단박에 알았다.

그리고 모르는 주소. 그 사람이 연고도 없는 곳에서 다른 사람의 글씨체로 본인의 이름을 적고 자신의 집 주소로 보내온 우편물.

의문투성이.

띵.

제희는 의문투성이인 우편물을 가지고 다시 차단된 공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도 밖을 나와서 그런지 평소와 다른 감각들이 또 깨워지려는 듯했다.

이 우편물이 자신도 모르는 박현재의 또 다른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보내는 우편물일 수 있었다. 제희는 소파에 앉은 뒤 우편물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문득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식탁 위에 올려진 휴대폰을 찾으러 다시 일어서서 움직였다. 3년이다. 그 사람이 죽은 지.

1년 동안은 그랬다. 그 사람과 자신의 사이를 알았던 자들은 대신 슬퍼해 주고 대신 울어 줬다. 그들이 자신에게 보여준 진심에 자신도 그 1년은 바쁘게 보냈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생겨 버린 공허함은 다른 것들로 채울 수가 없다는 걸 알았다. 익숙하다고 느낀 모든 게 편하지가 않았다. 웃긴다고 재밌다고 하는 영상들이나 영화를 보자고 했던 친구들. 그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자신은 모든 게 재밌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원래 재미라는 걸 잃은 사람처럼 움직였다. 내가 아닌 것처럼.

‘제희야. 내 목소리, 잘 녹음되고 있어?’

‘응. 그냥 말하면 돼. 다시 이어서.’

‘후후후. 그래. 그럼, 다시 시작한다. 흠흠… 오만과….’

녹음된 목소리가 사람이 아닌 기계에서 흘러나왔다. 듣기 좋은 목소리라 그가 가지는 독서 모임에서 그가 늘 낭독을 하기도 했다. 그런 목소리가 기계에서 나오자 분명 감각은 차단됐는데 피워 오르고 살아나는 감정은 또다시 마음을 아리고 따갑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상처로 받아들이게 되어 버린다.

우편물 끝을 뜯은 뒤, 타인의 글씨체로 적힌 그 사람이 보낸 우편물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편지지 두 장.

익숙한 글씨체. 자신이 아는 글씨체다. 약간 날리듯이 쓰는 그의 글씨체는 당당해 보였고 굳은 의지가 보이는 필압은 그의 성격을 드러나게 했다.

상처가 굳게 딱지져서 원래 난 상처를 보호하고 있을 줄 알았다. 가만히 놔두면 새살이 돋고 원래대로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그런데 딱지는커녕, 물집으로 잡혀서 손쉽게 다시 터져 버리게 됐다. 지금이 딱 그렇다. 다시 터져서 상처를 제대로 봐달라고 아리고 따갑게 만들었다.

메말랐던 감정의 눈물은 그가 두 장의 종이로 써 내려간 편지지 하나 때문에 터졌고 마른 종이에 떨어진 눈물 또한 그가 적은 글씨를 번지게 만들었다. 잔잔하다 못해 요동칠 것 하나없이 고요한 바다든 땅이든 하늘 같은 곳엔 변동이 일어났다.

***

[제윤아, 잘 지내지?]

“네. 고모.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요새 바쁘다고 들었는데. 다행이다.]

“그러게요. 바쁘게 살려고 한 건 아닌데.”

[…오히려 그게 더 나아.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서.]

“…네. 고모… 아 고모, 저 들어가 봐야 돼요. 손님들이 워낙 많아져서. 일손이….”

[아, 그렇겠다. 미안하다. 내가 바쁜 사람, 붙잡고.]

“괜찮아요. 그럼,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후후후. 네.”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인데 끊는 것도 자신이 먼저 했다. 가끔씩 필요로 느끼고 싶어지는 결핍을 채울 땐 좋지만 상대방이 느끼기엔 본인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한다고 서운해하지 않을까 했다.

그래도 고모의 목소리는 늘 상냥했다.

띵.

손님이 많다는 건 맞다. 하지만 자신의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진 않았다. 그냥 핑계가 필요했다. 전화를 끊을 명분.

통화가 끊어진 이후에 온 문자를 확인한 제윤은 익숙한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제윤아, 제발 전화 좀 받아라.’

최근 통화 목록에 들어가 부재중인 전화번호를 보면 모두 다 익숙한 전화번호가 보였다. 자신을 다시 움직이게 하게 만들 곳.

말 그대로 움직이게만 만들 뿐, 살아가게 해주는 건 아니었다.

“후우….”

그래서 다시 무시했다. 굳이 지금 당장 살아가게 해주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장님.”

“아… 응.”

잠시 쉬고 있던 제윤은 직원의 말에 고갤 돌리자 바빠 보이는지 아니면 힘들어서 시무룩한지 모를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직원을 봤다. 지치겠지. 최근 들어서 일주일 손님을 오늘 하루 받고 있는데.

“손님들이 사장님을 찾으시는데.”

“…사진? 아니면… 사인을 해달라는 건지….”

“…….”

“후후. 아무 말 없는 거 보니까. 둘 다네. 금방 나갈게.”

“아, 네.”

휴게실 의자에 앉아 있던 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붙은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위에 붙어진 ‘용모 단정’, 하지만 제윤은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어 넘긴 후 마른세수를 했다. 잠은 충분하게 잤기 때문에 피곤해 보인다거나 스트레스가 가득한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생기만 없어 보일 뿐. 그리고 생기가 없는 건 맞아서 제대로 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맞았다.

“와, 대박. 내 말, 맞지? 내가 그냥 본 게 아니라니까.”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 손님으로 들어와 커피만 시키고 자리에 앉아 주변 풍경을 구경하다가 갈 줄 알았다. 대부분의 손님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들켰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장님.”

주문대 앞에 있던 직원인 태훈은 자신에게 커피 두 잔을 내밀었다. 가끔 사장님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자신을 찾으러 이 먼 길을 온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차리기 위해 직접 커피를 가져다주거나 직원이 내린 커피를 픽업대에 올려놔 주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 이 행동만 스무 번, 가까이했다. 자신을 힐끔 쳐다보곤 자신을 몰래 찍어 가고. 분명 아까 전화를 했던 익숙한 번호인 사람은 자신이 어디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자신이 없을 때, 찾아올 수도 있었다. 자신이 없어서 그냥 돌아간 것일 수도 있었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픽업대에 트레이에 담긴 커피 두 잔을 내려놓자 커피를 찾으러 온 손님 두 명은 싱글벙글이었다. 돈을 주고 시킨 커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관심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있었다.

“진짜 모델, 우제윤 맞죠?”

손님은 들떠서는 휴대폰을 가슴에 묻은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밝은 두 눈동자는 자신의 입에서 그 대답이 나오길 기다렸다.

“네? 맞죠?”

“감사합니다. 직접 여기까지 찾아와 주셔서.”

“대박. 대박.”

확인이 됐으니 입을 틀어막으면서 손님은 휴대폰을 본 뒤 자신에게 내밀었다. 자신과 사진을 찍기 위해 시킨 커피. 얼음이 담긴 잔은 냉기가 녹아 물이 떨어져서 잔을 받친 코스터를 적셨다. 잔에서 떨어진 녹은 물기로 젖은 건 다행히 실리콘이라 상관없었다.

“저희 둘이랑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실 수 있나요?”

들뜬 손님은 제윤에게 폰을 내밀고는 자신의 답을 기다렸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제윤은 고갤 끄덕거렸다.

“제 SNS에도 올려도 되나요?”

막은 적도 없지만 올리라고 한 적도 없었다. 하루에 몇 테이블이나 열 명도 오지 않는 카페가 유명해진 건 SNS 때문이었다. 자신의 가게가 유명해지면 좋아하는 사장들도 있다. 상업성으로 차린 카페든 어디든 가게는 장사가 잘돼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카페를 차린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카페를 차린 건 고모의 제안이었다. 뭐라도 하라고.

뭐라도 하기 위해 차린 게 카펜데 뜻밖에 유명해져 버렸다.

“네.”

꺄악!

입을 막았는데도 손님의 기쁨은 당사자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았다. 다섯 개도 안 되는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에게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사진을 못 찍었는데 다시 가면 찍어 줄까 하는 속마음이 그들의 표정에서 드러나 보였다.

손님 두 명은 손가락으로 V를 만들고는 자신이 쥔 휴대폰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연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쥐어짜 내서라도 지을 수 있는 미소와 웃음은 가식으로라도 할 수 있었고 그런 자리를 10년 가까이 했으니 몸에 배는 것도 무의식적으로도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커피 잘 마실게요.”

“네. 감사합니다.”

고갤 숙이며, 감사하단 의미를 표시했다. 이건 가식이 아니다. 가게가 조금 더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니까.

“저도 한 장만….”

다른 손님도 그 모습을 봤는지 쑥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찾아왔다. 태훈과 눈이 마주쳤다. 태훈은 이런 모습을 자주 봤다. 유명했던 모델이 차린 카페.

혼자 일을 하던 사장이 직원을 꾸린 건 이 때문이다. 그에게 바쁘거나 바쁘지 않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델이었던 그를 알아봐 주지 않길 바랐던 것.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가 세운 소신과 맞지 않았다. 애당초 허망한 꿈이란 걸.

“그렇게 쳐다봐도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사장님.”

태훈은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말 그대로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직원이 사장의 가게를 망하게 만들면 안 됐다. 그가 정말 돈 벌 생각이 없다면 손님들을 상대할 때 불친절하게 대한다거나 위생의 문제로 가게를 문 닫게 할 정도로 소문을 나게 만들어서 찾아오는 이들이 없게 만든다면 모를까.

“알아.”

마찬가지로 작게 대답했다. 그런 두 사람을 또 본 사람들은 몰래 그들의 사진을 찍어 갔다. 그리고 그 사진은 각자의 휴대폰에만 저장하지 않았다. 이런 사진은 널리 알려야 한다면서 본인의 SNS에 올리기 바빴다. 연관되는 해시태그를 몽땅 걸면서.

딸랑.

듣기 싫은 소리라고 표현을 하면 안 됐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태훈과 제윤은 습관성으로 ‘어서 오세요!’를 외쳤다. 둘 다 무미건조한 목소리.

“어머, 밖에 비 엄청 온다.”

누군가가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쏟아진 비는 손님을 더 들어오게 만들기도 했다. 비를 피하러 올 곳은 이 주변에서는 여기 밖에 없었다. 속으로 한숨을 크게 쉰 제윤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바라봤다.

손님들은 우산이 없어서 ‘어떻게 하지?’라는 말들을 하면서 휴대폰으로 날씨를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올 것을 대비했었는지 접은 우산을 들고 오는 사람은 카운터까지 걸어오면서 손님인 듯 아닌 듯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과 같이 무미건조한 사람.

“주문 도와드릴까요?”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요.”

“…네?”

흔하게 오는 손님들의 비율 중에서 85% 이상이 2, 30대 여성이었다. 그런 성비율에 포함되는 것 같은 여성이 카페에 와서 주문은 하지 않고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했다. 여긴 카페지, 파출소가 아니었다.

근처에 파출소가 보이지 않아서 여기로 온 건가. 태훈은 처음 듣는 질문 아닌 질문에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대답했다가 제윤을 보기도 했다.

“파출소를 찾는 거면 저희가 잘 알아서요.”

이 근방에서 파출소는 올라왔던 길을 따라 내려가야 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조용한 지역은 온통 주변이 산밖에 없었다. 볼 거 하나 없는 곳에 차린 카페다. 이곳에 뜬금없이 있는 카페도 웃기지만 사람을 찾으러 이곳에 온 것도 당황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파출소에 갈 일이 아니라서.”

여성은 들고 온 우산을 주문대 위에 손잡이를 걸고는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뒤에서 보면 손님들은 혼자 온 여성이 커피를 주문하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 거라고 생각할 게 뻔하게 보였지만 반대로 여성은 아니었다.

“주소가 여기로 되어 있어서요.”

가방에서 꺼낸 건 지갑도 아닌 뜬금없는 흰색의 편지 봉투.

윗부분은 뜯긴 채로 있었다. 안에 편지지는 없기에 얇은 봉투를 내밀자 태훈은 손님이 준 거라 받자 옆에 있던 제윤이 그 편지 봉투와 그 봉투를 들고 온 여성을 내려다봤다. 검은색의 곱슬한 긴 머리.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이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아 보였다. 화장기 있는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여성은 20대 후반이거나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태훈은 받아 든 봉투에 적힌 주소를 봤다. 보내는 사람 란에 적은 주소는 카페 주소와 동일했다. 하지만 보내는 사람 란에 적힌 이름이 누군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주인에게 편지를 돌려주려 했다.

“저희 가게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

“제가 보냈어요.”

제희는 그 옆에 있던 남자를 올려다봤다. 관리를 안 한 살짝 긴 머리. 잘 어울려 보이는 머리는 짙은 검은색으로 그의 얼굴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큰 키는 그의 존재감을 드러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짙은 이목구비를 가진 자가 자신에게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본인이라고 했다.

그는 박현재가 아니다. 분명히 그는 죽었다. 자신이 그의 장례식장에 함께했었으니까.

“누구세요.”

제윤은 편지 봉투에 적힌 받는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다.

‘서제희’

자신도 보는 건 처음이다. 자신은 누구도 시키지 않은 부탁을 받고 편지를 준 것이다. 그냥 우연히 발견한 부모님 유품을 들여다보다가 발견한 거니까.

딸랑.

비를 피하러 온 손님들이 더 있었다. 주문대에 서서 제윤을 올려다보는 제희는 뒷사람이 느껴졌지만 자신이 그에게 말했을 때,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자신을 아는 것 같은 얼굴을 하지도 않았고 그저 내려다보는 얼굴로 있었다.

“태훈아.”

“아, 네.”

태훈은 제윤의 의도를 알았는지 제희 뒤로 온 손님들의 주문을 먼저 받으려고 말했다. 그런 뒤 제윤은 말했다.

“제가 아는 선에서만 대답해 드릴 수밖에 없어서요. 들어오세요.”

픽업대 옆, 한 사람이 옆으로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은 카페 안, 그들이 쉬는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윤이 고갯짓을 하자 제희는 주문대에 걸어 둔 우산을 챙기며,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