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월 / 블루하우스를 만난 달''''창을 열자, 조금 전까지 피아노가 놓여 있던 자리로 햇볕이 내려와 곰실거렸다. 덕분에 바닥에 나풀대는 먼지 덩어리들이 빤히 드러났다. 다행히도 그 먼지 덩이들이 이나를 허전함이나 상실감에 시달릴 틈도 없게 해주었다.'“일단 청소부터. 그렇지, 강이나?”'누가 듣고 있는 것도 아닌데 산뜻한 목소리로 말한 다음 이나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 들었다.'“어차피 이 집에선 거의 치지도 못했는데 뭐. 아래 위층에서 다 시끄럽다고들 해서. 그 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지. 빠져나가고 나니까 훨씬 넓고 좋네.”'비질을 하며 이나는 짐짓 씩씩하게 말했다. 하지만 걸레를 가져다 바닥을 쓱쓱 문질러 닦아내고 나니 빈자리가 더욱 커 보였다.'“괜찮아, 괜찮아. 까짓 피아노, 돈 벌어 다시 사면 되잖아. 그래, 강이나 서른 살 되기 전에 근사하게 잘 빠진 놈으로 새로 산다 이거야. 약속해. 약속해, 강이나. 그니까 괜히 센치해질 거 없어. 그렇지?”'애써 다독여 보았지만 마음 밑바닥을 맴도는 쓸쓸함은 아주 가릴 수가 없었다. 이럴 땐 자신이 피아노 전공이라는 게 공연히 부끄러워진다. 애초에 사치스러운 선택이었을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꼬박 2년 동안 돈을 모아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도, 날고 기는 동급생들에 비해 피아노 실력이 어쩐지 딸린다 느껴질 때에도, 이나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후회해본 적은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를 쳐 밥을 벌어 먹고 살 수 있기를,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늘 긍지로 똘똘 뭉쳐 살아왔었다. 하지만 오늘, ‘밥’을 위해 피아노까지 팔아버리고 나니 얼마쯤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뒤돌아보지 않기. 소득 없는 후회 따위 하지 않기. 힘내자, 강이나.”'거울을 마주 보며 이나는 다부지게 다짐했다.'걸레를 빨아 널고 손도 말끔히 씻고 나서야, 이나는 봉투를 열어 보았다. 피아노를 보내는 대가로 받아 쥔 돈은 정확히 백만 원. 밀린 집세를 내고 나면 한 달은 간신히 버틸 수 있을 액수였다.'“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 한 달 후의 일을 왜 미리부터 걱정하니? 강이나답지 않아. 안 그래? 우선 쌀부터 사고, 냉장고도 좀 채워 놓고 그러자. 먹어야 기운을 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