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경고하는데 너, 앞으로 내 눈앞에 알짱거리지 마라! 별로 재미없으니까!”'지윤은 자기 할 말만 하고 휙 가버리는 그를 망연자실 바라보았다. 요즘 들어 갑자기 달라진 그의 태도도 이해하기 힘들었었는데 오늘, 바로 지금 그가 내뱉은 말은 지윤의 가슴에 큰 상처가 되고 말았다. 혼자 남겨진 빈 방송실이 황량하게만 느껴졌다.'한성 사립 고등학교는 전교생의 70%가 상류층 자제들이다. 국내 최고의 대학은 물론, 미국의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학교로 유럽식 건축물의 국내 유일의 기숙학교다.'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지윤은 수많은 서클의 유혹을 받았다. 이제 막 입학해 학교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던 신입생 때여서 룸메이트인 나영과 머리를 맞대고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영어 연극반에 들어가서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연기해 보고도 싶었고, 문학반에서 시를 지어 낭송해 보고도 싶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눈에 띈 곳이 바로 방송반이었다. 방송반 선배들의 설명회를 듣고 나서 망설임 없이 가입한 그녀는 그곳에 정이수도 가입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입학식 날, 우연히 인사하게 된 이수. 그는 지윤 모친의 대학 선배 되시는 분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안면을 텄던 터여서인지 이수는 유독 지윤에게만 친절히 대해 주었었다. 물론 그의 화려할 정도로 눈부신 최상류층이라는 신분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는 별로 내색하는 일도 없었다. ''아직은 신입생인 지윤에게 방송반에서의 일은 허접한 잔심부름이 전부였지만 서클 모임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가 정이수, 그였다. 책과 공부밖에 모르던 순진한 자신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친절하게 대해주던 정이수. 그러던 그가 하루아침에 돌변한 것이다. 거만하다느니, 무례하다느니 갖가지 그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이 나돌아도 지윤은 믿지 않았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그녀에게 친절했었으니까. 그러나 방금 보인 그의 태도는 뭐란 말인가. 매사에 진지한 성격이었던 지윤은 그의 말을 되새기며 뭐가 잘못된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얘, 지윤아!”'룸메이트인 나영의 부르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지윤은 그녀를 돌아보았다.'“어, 나영아.”'“뭐야? 무슨 생각에 그렇게 골똘하니? 방금 나간 애, 정이수 아냐?”'“음.”'“아유, 쟨 정말 재수야. 지가 재벌 3세면 다야? 어찌나 어깨에 힘주고 사는지. 자기가 진짜 황태자인 줄로 알고 사는 얘 같다니까.”'나영은 처음부터 그를 좋게 보지 않았다. 입학 후 한 달도 안 되어 그녀의 입에선 정이수란 이름이 비난조로 자주 거론되었다. 지윤은, 그가 그만큼 유명세를 치르는 것이리라 여기면서도 자신에게 대하듯 다른 이들에게도 조금만 친절하게 대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