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이야기> ''''-“방년 열일곱 청가[家]의 장녀 수련[睡蓮]이 여아[女兒]임을 시조님과 조상님들께 고하니…….”'향이 피어오르는 사당 안은 명절도 아닌데 여러 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청가의 일가친척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사당 안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천라국의 대장군이자 청가의 가장인 자환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조상님들 앞에서 그간 벼려 왔던 모든 일을 고했다.'아들이 귀한 청 가문. 그래도 꼭 하나씩 대를 이을 자가 태어났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지금의 대부인은 수태의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혼례를 치른 지 한 해, 두 해가 가고 세 해가 지나갈 무렵 어렵게 얻은 아이. 그 아이는 딸이었다.'그렇지 않아도 손이 귀한 집안이다 뭐다 해서 돌아가신 그의 부모님은 첩을 들일 것을 권했다. 허나 자환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이런 말이 부인의 귓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바람막이를 하며 날로 그 마음이 애틋해 지기만 하였다. 진심으로 사모하고 또 사모해서 이룬 인연이기에 다른 여인을 보라는 부모님의 청을 뿌리친 것이었다.'-“……이에 아우인 경환의 장자, 휘를 양자로 맞아 청가의 대를 이을 것이니 조상님들께서 이 후손들을 굽어 살피옵소서.”'자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 떠밀린 소년, 휘는 백부님에게서 향을 받아들이고는 정성스럽게 피웠다. 쪼르르 주전자의 주둥이를 타고 흐르는 술 향기가 사당 안에 가득 찼다. 이전보다 더욱 마음을 경건하게 다듬은 휘는 술잔을 받아 위패 앞에 내려놓았다.'-‘누님, 이제 비로소 수련 ‘형님’이 아니라 수련 ‘누님’이 되었소. 이 아우가 정말 잘 할 것이니 이제 지켜 봐 주세요.’'그에게는 언제나 닮고 싶은 형님이었던 수련. 휘는 돌아가신 조부모님에게서 벗어나 본래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이 날을 진심으로 축하했다.''-“마님, 사당에서의 일은 모두 끝이 났다 하옵니다.”'밖에서 들려오는 하인의 목소리에 대부인은 그에 한숨을 쉬며 눈물을 글썽였다. 자신의 부덕함 때문에 애먼 딸이 본의 아니게 열일곱 해 동안 사내로 자라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평생 딱 하나 생긴 아이가 계집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당장 친정으로 내치겠다고 달려오는 시부모님의 발자국 소리가 오늘이면 들릴까, 아님 내일이면 들릴까…….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린 날들. 그 불안감을 함께 느끼던 자환은 결국, 부모를 속이기 위해 아이를 아들로 키우자 다짐했다.'-“내 딸 련아, 이리 와 보렴. 어디 한번 안아보자.”'아들로 키웠기에 대놓고 살가운 표현조차 해본 적이 없던 대부인이었다. 어여쁘다 안아보고, 장해서 쓸어보다 시부모께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에 전전긍긍했던 세월. 이제 조상님께 이 어여쁜 아이가 사내가 아니라 실은 여아라오, 고하고 나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어머님, 소자…….”'수련은 잠시 주책맞은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철저히 사내로 살아왔더니 모든 것이 여인네 보다는 사내에 익숙한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