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린만의 특별한 음색이 덧입혀진 <적루>는 미하의 완벽했던 <적루>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미하의 <적루>가 아름다운 그리움을 연주했다면, 사린의 <적루>는 절실한 그리움을 담고 있었다.'한 여인의 외로운 삶과 그리움을 애절하게 풀어내는 소리. '첫 소절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오, 말없는 감탄사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눈에는 경이로움이 들어찼다. 그런 사람들을 둘러보며 무원은 보이지 않는 미소를 흘렸다. '이대로 무사히 연주를 끝낸다면 오늘 취재도 통과할 수 있으리라. 조금은 느긋해진 무원은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허공으로 솟구친 소리가 저마다 깊은 울음을 달고 그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저릿한 슬픔이 심장 한가운데를 움켜쥐는 듯한 연주. 자닝한 슬픔이 느껴지는 음악을 듣노라니 이상하게도 코끝이 알싸해졌다. 참으로 기묘한 소리라. 조금은 어수룩하고 조금은 서투른 저 소리가 앞서 들었던 완벽한 <적루>보다 더 감동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에 빠진 사내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이려나? 스스로의 생각에 겸연쩍어진 무원은 피식 마른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바로 그때였다. '퉁. 둔탁한 음과 함께 소리가 멈췄다. 소리가 멈추니 허공을 메우던 슬픔과 그리움, 고독과 외로움도 일시에 사라졌다. '느닷없는 적막. '무원은 눈을 뜨고 사린의 장막을 응시했다. 다시 연주가 들려오길 기다렸지만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무슨 일이지?”'갑자기 멈춰진 연주에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비파가 연주하는 애절한 노래에 온 심장이 녹아내리던 참이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눈물을 글썽이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일순간 취재장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찌 된 것이냐? 네 꽃병아리가 왜 연주를 멈춘 것이냐?”'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융기는 알 수 있었다. 저 장막 속에 뉘가 있는지. 자신만의 특별한 색깔을 갖고 있는 사린의 연주를 그의 귀는 용케도 골라냈다. '융기는 장막에 그려지는 사린의 그림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무원에게 물었다.'“현이…… 끊어졌습니다.”'무원은 장막 안의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올곧은 눈동자에 근심이 서렸다.'“현이 끊어져? 그럼, 큰일이 아니더냐?”'융기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비파란 술대로 현을 타 소리를 내는 악기인데, 그 현이 끊어졌다면 아예 연주를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던가. '“다행히 다 끊어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평온한 말과 달리 무원은 심장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단사린, 괜찮은 것이냐? 너…… 괜찮은 것이야?’